<방상혁>
아마도 큰 딸이 세발 자전거를 탈 때였으니까 이 십오 년 전쯤 일 것이다.
사원 아파트에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직장 동료가 있었다.
그의 아버님을 가끔 단지 내에서 만나 뵐 때가 있었는데 인사를 하면 그냥
환한 얼굴로 웃음을 띠시곤 하였다. 특별히 인사를 나누고 지내는 사이도 아닌
짧은 만남이었다. 그의 부모님이 신실한 기독교인 이라는 말은 듣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분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이 왔다. 연세로 보아 돌아 가실 나이
는 아직 이르신 것 같았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나중에 문상을 가서야 들은 이야기지만 아침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
하시기를, 오늘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서 오후 2시경쯤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러면 절대로 울지 말고 기쁨으로 나의 뒤처리를 하라고 당부 하
셨다는 것이다. 너무나 현실감이 없어서 어정쩡하게 물러나와 출근 하였는데
그날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전갈을 받고 달려와서 운명하신 시간을 아내에게
들어 보니 아침에 아버지가 이야기한 바로 그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의 인생의 끝을 예지 한다는 것은 참 영광 일 것이다.
김 활란 박사는 기회만 있으면 학생들에게 속옷을 늘 깨끗하게 입을 것을 강조 했
다고 한다.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니까 늘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오늘 바울은 그의 신앙의 결산을 독백하고 있다.
"관제(제사 때 마지막으로 부어지는 포도주)와 같이 벌써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딤후4;8)"
바울은 하나님이 지시한 모든 일을 마치고 사모하던 주님의 품으로 가는 순교의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의로운 재판장이 그 날에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같은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고 있다고 바울은 고백하고 있다.
비록 이곳의 사역이 어디 바울과 비교가 되겠는가, 하지만 나 또한 주가 나타나심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인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오늘도 이 말씀 가운데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노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는 삶의 결산이 되기를 기도한다.
디모데 후서 마지막 장을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