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복음주의 이해
구속(救贖)계획을 세우신 하나님은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이미 신구약 성경을 통해 계시하셨다고 이해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후대에 이르러서였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와서 논의가 활발해진 것으로, 특별히 구스타브 바르넥(Johannes Gustav Warneck)의 저서들에서 시작되었고, 1937년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선교사 협의회(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대회를 통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Charles Van Engen, God’s Missionary People (임윤택 역,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 서울: 도서출판 두란노, 1994), 44. 그러면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교회와 선교와의 관계에서 선교가 교회의 중심적 사역이고,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본질적 사역이라는 의미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르넷과 여러 학자들이 논의를 시작했을 때에도 “교회의 본질은 선교를 떠나서 정의될 수 없고, 선교는 교회가 세상과의 선교적 관계를 떠나서는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Ibid., 45. 되면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밝혀진다. 여기서 선교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이라는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고찰해본다.
1 교회의 존재 기원과 관련된 의미
교회는 존재의 기원에서 선교적 의미를 가진다. 그 이유는 선교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경륜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의 구원을 중심으로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파기된 관계의 회복을 의도하신 하나님의 계획에는 선교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앤더슨(W.Anderson)은 “선교신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결정적인 인식은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그 원동력을 얻는다는 인식” Wilhelm Anderson, Further Toward a Theology of Mission, The Theology of Christian Mission, ed. Gerald Anderson (Nashville: Abingdon Press, 1961), 301. 에 근거해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에 의하여 구속함을 받은 공동체로서 교회가 기원된 것이다. 교회는 또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는 신적인 공동체로 기원했기에 “구속계획에 있어서 중심에 위치한다(the Church is central in the redemptive plan).” Donald R. Jacobs, Pilgrimage in Mission (Kitchener: Herald Press, 1973), 123.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의 활동의 결과로서 인간의 역사 속에 자신의 은혜로운 뜻을 우리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계시하는 수단에 포함된다. Darrell L. Guder, Be My Witnesses (Grand Rapids: Eerdmans, 1985), 16. 이러한 이해들은 교회란 기원에서 선교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블라우(J.Blauw)에 의하면 “교회는 선교운동의 실태와 상관없이 선교적 교회이며,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확신이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여러 세기를 걸쳐 유지되어 온 정적(static) 교회론이 이제는 점차 종말론적인 면과 선교적인 면을 모두 가지는, 보다 동적(dynamic)인 교회론으로 대치되고 있다” Johannes Blauw, The Missionary Nature of the Church (전재옥, 전호진, 송용조 역, 교회의 선교적 본질,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출판국, 1988), 135. 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가 선교하는 행동과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선교적인 본질을 가졌다는 지적이다. 보쉬(D.J.Bosch)에 의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에클레시아란 선교적인 특징을 지닌 공동체로 이해되었다. 이러한 바울의 입장을 밝힌 학자들로는 미크(Meeks)와 말허브(Malherbe)로서 그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에클레시아와 다른 집단들 간에 여러 주목할 만한 유사점들이 있으나 의심할 여지없이 에클레시아는 수이 게네리스(Sui Generis)로서 그 독특한 특성들이 선교적인 공동체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David J. Bosch, Transforming Mission (New York: Orbis Books, 1991), 165-66. 그는 계속하여 “부상하는 교회론에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Ibid., 372.
2 교회의 존재 목적과 관련된다는 의미
선교가 교회의 존재 목적과 관련 있다는 것은 선교란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사역이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의미는 “왜 아직도 선교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왜 아직도 교회가 존재 하는가”라는 질문을 유발한다 Ibid., 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선교란 교회의 활동으로 본질상 교회를 통하여 수행되어지는 그리스도의 활동 이상 아무 것도 아니다” J.H.Bavinck, An Introduction to the Science of Mission (Phillipsburg: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60), 62. 라는 이해나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선교함으로 그의 소명을 실천하게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으로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을 발견하게 된다” Van Engen, 상게서, 34. 는 설명은 정확한 고찰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블라우는 교회가 “‘인류를 위한 증거의 사명’을 의식할 때에만 교회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곧 “‘선교하는 교회’만이 그 자체를 ‘교회’로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으로 말한다. Blauw, 상게서, 144. 그는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선포하는 순간부터 교회는 불충분한 존재가 되며, 세계에 대한 축복과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 Ibid., 149. 으로 진술한다. 그는 계속하여 “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어떤 나라에 속해 있든지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 어느 민족, 어떤 나라에 속하여 있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시민 된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할 때에만 그는 그 가운데서 복의 기관이 될 수 있는 것” Ibid., 151. 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가 선교적 삶을 살 때만이 교회의 존재 목적에 부합한다는 의미이다. 브루너(Emil Brunner)는 더욱 간단하면서도 의미 깊게, “불이 타오름에 의해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에 의해서만 존재한다” Edward R. Dayton and David A. Fraser, Planning Strategies for world Evangelization (곽선희, 김종일, 이요한 역, 세계선교의 이론과 전략,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국, 1991), 99. 고 표현했다. 그 외에도 크라스(Alfred C. Krass)가 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선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나, 밀러(Donald G. Miller)가 선교를 전 세계에 대한 그리스도의 관심을 표현해 가는 그리스도의 몸 자체로 설명하는 내용들은 Ibid., 101.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에 있음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3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라는 의미
교회는 기원에 있어서 선교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 속에는 이미 선교가 교회의 주변 과제일 수 없고 핵심적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위에서는 교회의 기원과 관련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라면 여기서는 과제의 중심적 성격을 부각시킨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설명이다. 물론 여기 선교적 과제란 교회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복음전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섬김과 봉사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을 전재한다. 시맨드(J.T.Seamands)는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와 사명으로서의 선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회는 단지 선교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선교이다. 교회는 그저 선교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선교는 부차적이 아니라 본래적이며, 선택적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이다. 선교는 교회의 일차적인 사역을 구성하는 바, 우리 주님께로부터 위임받은 바로 그 사역이다….교회는 하나의 선교, 곧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며 주님께서 직접 성취하려 오셨던 그 선교를 성취하는 하나의 선교를 가지고 있다…..교회는 그리스도의 선교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교회의 생동성은 교회의 선교성에 의존하고 있다. John T. Seamands, Harvest of Humanity (Wheaton: Victor Books, 1988), 32. 이러한 이해는 선교가 교회의 프로그램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있다. 사실 “선교적 교회의 전체적인 과업은 그 교회의 설교와 가르침과 사랑의 실천에서 구원에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고 설명해 주는 일이며,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셨다는 영원한 하나님의 선교 속에 밝히 나타나 있다” Edward R. Dayton and David A. Fraser, 상게서, 98. 고 볼 때 교회의 전체적인 과업의 중심은 선교임에 틀림없다. 스코그런드(J.E.Skoglund)에 의하면 기독교 선교의 중심으로서 복음전도를 교회의 주된 임무로 해야 할 것과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위임할 수 없는 일임을 강조하여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주된 임무는 세상의 길모퉁이에 서서 ‘복된 소식이 임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무시함으로써 이 의무를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교회와 선교는 하나이며 어떤 식으로든 따로 분리될 수 없다….선교는 결코 교회를 나타내는 표식들 중에 하나쯤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의 표시 그 자체이다. 소위 다른 모든 표지들은, 합법적이라면, 선교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약속한 그 권능은 증거 하라는 권능이다. 교회의 모든 다른 활동들은 선교라는 본질적인 과제로부터 파생되어 그것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한다. J.H.Kane, Understanding Christian Missions (신서균 역, 기독교선교이해,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7), 380에서 재인용. 이상의 고찰에 의하면 선교란 교회의 기원과 관련이 있으며, 교회가 교회됨을 나타내는 과제로서 교회의 핵심적인 사역이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4 교회의 존속과 관련된다는 의미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도록 위임된 교회가 세상 끝까지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이 선교이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란 세상 끝 날까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공동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해야 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선교이다. 교회가 선교를 수행함으로 지상에서 공간적으로 땅 끝까지와 시간적으로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달리 표현하면 선교를 통해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지는 교회를 통해 선교하는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교회란 선교에 의해서 생겨나고 지속해 간다는 것은 곧 교회가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내리는 탈교회 중심의 선교를 경계하면서 조직 교회의 선교적인 책임을 강조하여 “사도행전이 가르치기를, 선교는 조직교회에 의하여” 수행되었고 또한 “올바로 수행된 선교의 결과가 바로 조직 교회였다” 신내리, 칼빈주의 신학과 선교, (서울: 성광문화사, 1988), 199. 고 말한다. 이것은 선교에 의한 교회의 존속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블라우는 “복음전파란 세상이 아닌 바로 교회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 Blauw, 상게서, 141. 로 강조했는데, 선교에 의해서 교회가 존재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이것이(선교) 있음으로써 과거의 교회가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 있었던 것이며, 지금 세계 안에 세계를 위해 존재하며, 또한 그로 인해 역사 완성의 때까지 교회는 존재” Ibid., 148.하는 것으로 밝힌다. 스나이더(H.Snyder)에 의하면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전도의 대행자이면서 아울러 결과라는 표현을 통해, Howard Snyder, Community of the King (Dowoners Grove: InterVarsity, 1977), 103.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있고, 선교를 위해서 있는 교회의 선교에 의하여 또다시 선교할 수 있는 교회를 세워나가게 된다는 것을 피력했다.
이상의 4가지 방향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선교를 통해 존재하게 되었으며, 선교를 위해 존재하며, 선교가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이며, 선교에 의해서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가 존속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 사실은 곧 교회란 피할 수 없이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이콥스(Donald R. Jacobs)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임재 안에서 만나며, 그의 주되심에 개인적으로나 협동적인 삶을 복종하는 곳에 존재하는 단체로서의 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의 센터라는 것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고 성경의 권위 아래 자신을 놓는 어떤 단체든지 선교적 위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 Jacobs, 상게서, 120. 벨코프(Hendrikus Berkhof) 역시 세상을 구원하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교회는 임시 대합실과 같이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 있어야하고 동시에 서로 연결시키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피력했다. Van Engen, 상게서, 53에서 재인용. 선교란 교회에 위임된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사역이라면 교회는 선교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Obtained from 이 복 수 (고신대학교 교수, 선교학, Th.D.)- 수도원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