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야 이야기3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말한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마야인이 아닌 사람들이 경제력을 가지고 있고, 군사력 또한 마야인이 아닌 사람들이 쥐고 있다. 모든 공식적인 부분에서 주도권이 마야인이 아닌 스페인이나 독일에서 온 정복자의 후손들에게 있다. 서양인들과 그들의 후손이 권력을 쥐고 있고, 라틴아메리카 태생의 백인에게 그 권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

2가지 정복
Antigua(과테말라 안띠구아)는 16세기 중반 스페인이 건설한 도시이다. 스페인 식민지 때, 200여 년간 수도로 활용됐지만 지금은 인구 3만의 작은 관광도시이다. 아직도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정취가 도시 곳곳에 남아 있다. 거리를 걷다보면, 현지인보다는 외국인을 더 많이 만나게 될 정도이다.

안띠구아 도시의 인디오 아이들은 천을 들고 거리로 나와 과거 한 때, 자신들을 지배했던 이방인들에게 천을 팔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인디오의 먹고 사는 대부분은 이방인들의 손에 달려 있다.
julian carlos(훌리앙 까를로스, 상 까를로스 대학 인류학교수)는 “중앙아메리카는 두 번의 정복을 겪었다. 첫 번째 정복은 전쟁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으로 원주민을 직접 억압했고, 두 번째 정복은 이데올로기, 정신에 대한 부분으로 카톨릭 성당을 통해 정복이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이는 마야를 정복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데올로기 정복은 먼저 마야 원주민들의 사고방식부터 바꾸어 놓았다. 이는 마야 원주민들이 마야의 정신을 버리고 새로운 신, 새로운 사상,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야 했다는 것이다. 이는 마야의 근간을 흔든 일이었다.

일반학교에서 가르치는 마야는 마야의 인디오들이 나뭇잎에 그림을 그렸다든가, 스페인 정복 후의 마야 인디오들은 도망쳤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할 뿐, 마야의 역사에 대해 학교에서는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했다.
보통의 원주민 여자들은 대부분 천을 짜서 생계를 유지한다. 어머니의 어머니로부터 전해온 방식으로 천을 짠다. 그래서
마야 인디오 가족들을 살펴보면, 실질적으로 여성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
마이라 로빼스(29살)씨도 가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녀는 “제 꿈은 간호사나 비서가 되는 것이었지만, 부모에게서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며, 그런 꿈을 갖고 있던 마이라에게 동생은 “너 미쳤냐? 천이나 짜라”고 했단다.

마야의 여자들은 아이를 키우고, 천을 짜서 생계를 유지한다. 남자 아이들은 자라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린다고 말하며, 그녀는 마야인들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창대했던 과거, 마야 인디오들은 지금의 가난과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과 싸우며,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내란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디오 원주민
Quiche(끼체 주), Nevaj(네바흐 시)에는 아직도 마야의 옷을 입고, 마야의 언어를 쓰고, 마야의 달력을 지키며 사는 인디오들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 끼체주는 과테말라의 현실에서 인디오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1947년 과테말라 공화국이 선포된 이후, 과테말라 인디오들은 자신들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광범위한 대중 운동을 벌였다. 식민지 시대부터 있었던 빈부격차와 원주민 차별에 대한 불만이 이때 터진 것이다.
하지만 1960년 군주 세력을 앞세운 우익 군부 세력은 쿠테타로 이들의 행동을 저지했다. 또 우익 군부 독재는 이 기간 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인디오 원주민들에게 무차별 학살을 강행했다. 그때 대략 14만 명의 원주민들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군부에 맞선 게릴라와 원주민의 내전은 1996년까지 무려 36년간 계속 됐다. 이곳에 사는 인디오 원주민들의 집안은 내란을 겪으면서 받은 깊은 상처들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마리엘라(Mariela)씨는 내전으로 아버지와 오빠들을 잃었고, 후안고메즈(Juangomez)씨는 딸과 아들을 잃었다. 이들은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가족들과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 때는 아빠의 마림바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전통음식인 따말(tamal)을 먹었고, 가족들과 춤을 추며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단다.
후안은 내전을 떠올리며,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장날이었다. 장날이라서 나도 마을에 내려갔다가 몬테레이에서 군대와 마주쳤다”고 했다.
마리엘라도 “군인이 집에 들어왔을 때, 우리 가족은 커피를 수확하고 있을 때라, 아빠와 오빠들이 커피를 수확하고 있었다. 군인이 들어왔지만, 그들이 우리를 해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와 오빠들은 남아서 계속 커피를 수확하고 있었다.
그 때, 군인들은 마리엘라 가족 모두를 집안으로 몰아놓고,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엄청난 비명소리가 들렸고, 수많은 집들이 불에 탔으며, 누가 도망가기라도 하면 총을 쐈고, 잡아다가 불타는 집에 넣었다고 했다.
이 내전은 끼시스 마을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그 때 군인들이 아빠를 죽였고, 오빠들을 불태웠다. 그 때 살아남은 사람은 엄마와 나 둘뿐이었다. 내게는 5살 난 딸아이가 있었는데, 군인들이 딸아이도 죽였다. 아이가 총에 맞아 죽어가는 것을 볼 수밖에 없었다.”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히 살아남아 있는데, 8년을 산 속에서 이 모든 아픔들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다. 매일밤 가족들은 머릿속에서 죽어갔고, 나는 그 괴로운 기억을 견디어 내어야 했다.
fransisco belasco(프란시스꼬 벨라스꼬, IXIL이실 지역 이장)은 “1980년, 군사정권은 이실지역 주민들을 박해했다. 군대는 이실 주민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뤘다. 네바흐 시에 의하면 학살을 당해, 실종된 마을이 약 58개라고 했고, cochal(꼬찰)이나 chajul(차훌) 시에서는 118개 마을이 군대의 학살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했다.
후안은 “전 지금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슬픔이 있다”며, “지금을 기뻐하면서도, 문득 다시 슬픔에 빠져있는 날 느낀다”고 했다. 마리엘라는 “제가 받는 고통은 결코 사라질 수가 없다”고 전한다. “불에 타 죽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봤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그 기억은 결코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고 했다.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노벨 평화상 수상자)는 “육군들이 받은 군대의 명령은 마야의 마을들을 전멸시키는 것이었다. 마야의 마을을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마야의 힘을 두려워한다. 그 두려움은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다. 우리 마야가 가진 힘은 우리의 언어이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며, 우리의 달력이고, 우리의 토지이다. 또 그들에게 맞서는 우리 자신들이 바로 그 힘이다.”

Donde la indio va? (인디오는 어디로 가나?)
과테말라에서는 고용의 기회가 너무 적어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인디오에게는 취업의 문이 더더욱 좁은게 현실이다. 실업률이 계속 증가하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마약중독자들과 알코올 중독자들, 문맹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실업은 사람들에게 불법행위를 부추기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인디오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점상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일이면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며, 근근히 살아간다.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는 현실이기 때문에 노점상 단속으로 일을 못한다든가, 큰 병이라도 걸려서 목돈이 들어가야 한다든가,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현실이 힘들어진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는 마리아텔마(34세)는 말한다.
“나는 비록 암에 걸렸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죽을 날을 기다리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이 엄마를 기억할 때 우리 엄마는 끝까지 열심히 일했고, 항상 웃었으며, 우리와 함께 있었다”고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그녀의 아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일을 한다. 그 사실이 나를 자랑스럽게 만든다. 우리는 겸손하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주기도 한다.”

가난하고, 못 배우게 되고, 그래서 가난해지고, 악순환의 반복처럼 보이는 마야의 인디오들. 하지만 이들은 근근히 삶을 이어가면서,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서로의 힘이 되어주며 걷고 있다.
마리아텔마는 “살고 싶은 의지가 있으니까.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은 의지가 있으니까 열심히 하루하루 살아가는 거라”고, “무엇보다도 이 아이들을 만났고, 지금 나는 이렇게 숨쉬고 있기에 감사하다”고 고백한다. “나도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 있고, 삶은 계속 되어 가고 있기에,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나의 아이들이 있는 한 계속 가야하는 거다.”깊은 아픔을 겪으면서, 얻게 된 가난과 깨어진 마음, 그 속에서도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들을 위해 오늘도 성실히 삶을 살아내겠다는 엄마 마리아 텔마의 고백 같이 마야의 인디오들은 변화한 세상 속에서 좀더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들의 곁에서 우리 익투스는 함께 숨쉬며, 함께 걸어가고 있다.

2018/05/31
정리 방민경

EBS <불멸의 마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