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게 하시는 자(예수)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크리스천)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 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자녀들은 혈과 육(육체)에 속하였으매,
그(예수)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육체)을 함께 지니심으로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죽음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크리스천)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2:11,14~16)
하나님 아버지의 친절하심이
새삼 이 말씀을 통해 마음 깊이 와 닿는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거룩함을 입은 우리와 형제라고 부름받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단다.
둘다 하나님께로부터 났기에.
여기서 그의 겸손하신 태도를 본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때부터
육체를 입고 사는 우리에게는 죽음을 통과해야하는 운명이 정해졌다.
이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스스로가 육체를 입으시고,
죽음을 거쳐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죽음을 스스로 통과하시는 본을 보이시므로, 그의 사랑을 확증하신 것이다.
첫 번째는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인간을 위해 친히 인간이 되셔서 이 길을 통과하신 것이었다.
“나를 따르라. 죽음을 통과한 후,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니, 두려워말고, 나를 따르라.”
예수 그리스도의 끝이 없으신 겸손하심과 친절하심 속에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황송한 것인지 새삼 곱씹어 본다.
죽음의 세력을 잡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려보긴 했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나를 위해 나와 같은 모습으로 죽음이라는 길을 친히 통과해 내신 우리 주님.
그 주님의 한량없으신 친절하심과 깊은 겸손은
내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이 깊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친절의 행위는
천사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가족(아브라함의 자손)을 위한 거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족으로 불러주셨다.
우리의 맏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들을 위해
사람의 몸으로 친히 죽음의 길을 통과하셔서 생명의 길을 내셨다.
천사는 한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사탄이 됐지만,
인간은 반복된 잘못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통로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케되는 기회를 계속 주신다
물론 우리가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께 배려 받는 우리, 하나님의 가족인 우리.
그 위상으로 오늘 하루도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2019/03
<story ICHTHUS> 편집장